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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Branding)/굿즈

볼펜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했을 뿐인데..

QC LAB 2025. 11. 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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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제작을 처음 시작했을 때, 머릿속에는 단순한 그림이 떠올랐다. 외형을 예쁘게 만들고, 버튼 누르면 심이 나오고, 잉크만 잘 나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만들어온 영역이고, 시장에도 제품이 넘쳐나니 그저 디자인만 차별화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설계를 시작하고 자료를 하나씩 들여다보니 상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겉모습보다 내부 구조가 훨씬 복잡했고, 볼펜은 생각보다 기술 집약적인 물건이었다.

처음 분해한 시제품 안에는 단순한 스프링과 플라스틱 덩어리가 아니라, 마치 작은 기계장치처럼 치밀한 구조가 들어 있었다. 버튼 상단부의 가공 오차만 몇 마이크로미터만 틀어져도 눌리는 감이 이상해지고, 노크 방식의 회전 구조는 설계자가 단순히 부품을 배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동작 순서와 하중 분산까지 계산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심 역시 아무거나 끼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잉크 점성, 볼 구조, 노즐 압력, 심과 케이싱 사이의 유격까지 전부 고려해야 했다. 심이 흔들리면 필기감이 나빠지고, 반대로 너무 꽉 끼면 버튼을 눌러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하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었다. 외부 디자인을 조금만 수정해도 내부 공간이 바뀌고, 구조가 바뀌면 스프링 강도나 길이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둔 설계가 무너지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주도권을 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부 구조가 외형을 강제로 조정하고 있었다. 기능이 디자인을 제한하고, 디자인이 기능을 밀어내며 균형을 찾는 과정은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사고를 요구했다.

중국에 제작을 맡길까 고민도 들었다. 주문만 하면 알아서 형상 설계부터 양산까지 진행해주는 업체도 있었고, 생각보다 비용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외주에 맡기는 순간 그건 내가 만든 제품이라기보다 단순히 값만 지불한 결과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파악한 구조적 기준과 설계 논리를 모른다면, 수정이나 개선이 필요할 때 의존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 불편했다. 편한 길을 선택하면 빠르겠지만, 결국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했다.

 

가끔은 멈추고 싶어지고,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한 굿즈가 아니라 기능과 존재 이유가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 부딪히는 모든 난관은 제품을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고 싶어서 마주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언젠가 제품의 설계 철학과 품질 기준을 정의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지금 겪는 복잡함은 언젠가 누군가가 그 볼펜을 쓰며 아무 생각 없이 버튼을 눌렀을 때, 바로 그 자연스러움으로 증명될 것이다. 지금이 가장 힘든 순간이 아니라 가장 배움이 많은 순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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