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업, COFFEEPHARM 정체성의 원동력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만들기 대회에서 나는 반에서 가장 큰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라면 박스를 은박지로 감싸 테이프로 고정해 사람 형태를 만들었고, 부피만큼은 반에서 1등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입상 실패였다. 크기만 크고 완성도는 부족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단순히 커 보인다고 가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외형이 커질수록 구조와 균형, 내부 디테일이 따라오지 않으면 오히려 허술함이 더 빨리 드러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로봇 만들기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나라를 선택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숙제가 나왔다. 나라의 개념조차 잘 모르던 나는 집에 있던 계몽 백과사전을 펼쳤다. 페이지가 가장 많은 항목이 아프리카였고, 그 양에 압도당한 나는 아프리카 편 전체를 몽땅 복사해 제출했다. 발표를 위한 선택이나 해석은 전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조사한 내용 중 하나를 선택해 발표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양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일깨워 주었다.

아프리카

 

이 두 가지 경험은 훗날 COFFEEPHARM 브랜딩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초가 됐다. 카페를 구상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형 공간을 먼저 떠올렸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로봇 실패는 단순한 크기 경쟁이 위험하다는 경계심을 심어줬다. 크기를 늘리는 것보다 체계를 먼저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브랜드의 기초 원칙으로 굳어졌다. 아프리카 과제의 교훈은 모든 걸 다 하려는 대신 좁고 깊은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카페라는 넓은 범주에서 품질관리라는 특화 영역을 택하고, QC LAB을 통해 그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이 결정됐다.

SINCE 2016 COFFEEPHARM

 

공간 설계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먼저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지탱하는 공정 흐름을 만든다. 원두 입고부터 추출까지의 동선을 시각화하고,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품질 지표를 배치한다. 메뉴 개발에서도 무작정 수를 늘리지 않고, 실험과 검증의 횟수를 늘린다. 시럽이나 베이스를 약학적 도구에서 착안한 용기로 계량하는 것도 과시가 아니라 재현성을 위한 선택이다.

콘텐츠 전략 역시 같은 방향을 따른다. 모든 산지를 한 번에 다루기보다 하나를 선택해 농학적 요인, 가공 변수, 추출 변수의 상관관계를 끝까지 추적한다. 긴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근거와 단서를 남기는 방식이다.

나는 여전히 큰 공간을 꿈꾼다. 하지만 그 크기는 준비된 크기여야 한다. 실험과 공개, 교육이라는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듈화된 구조를 먼저 설계한다. 로스팅과 추출 검증을 위한 랩 모듈, 향미 훈련 모듈, 수질 실험 모듈, 그리고 이를 관람형으로 연결하는 투명 동선. 크기를 앞세우지 않되, 커졌을 때도 정밀성이 유지되는 구조가 필수다.

SINCE 2025 QCLAB

 

 

커피팜의 브랜딩 언어는 이제 크기나 양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반복 가능한 절차, 공개 가능한 데이터, 소비자와의 피드백 순환이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다. 어린 시절의 두 경험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준비되지 않은 크기는 실패를 부르고, 선택 없는 양은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커피팜은 철저히 준비된 크기와 깊이 있는 선택만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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