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내 하루는 늘 같은 장소에서 시작된다. 회사 정문을 지나 복도를 걸어 들어가면 특유의 실험실 냄새와 공조기의 일정한 소음이 섞여 만들어내는 실험실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맞이한다. 품질관리팀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이 공간이 가장 익숙한 생활 동선이 되었고, 특히 HPLC 기기분석실은 마치 출근 체크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하루의 업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첫 신호를 확인하게 된다.
기기분석실 문을 열면 이미 여러 명의 분석원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누구 하나 먼저 오라고 정해둔 것도 아닌데,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비슷한 시간에 모인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제약회사 품질관리라는 업무가 얼마나 높은 일관성과 규칙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실험실의 아침은 말수보다 움직임이 먼저다. 분석원들은 컴퓨터를 켜고, 오버나잇으로 돌렸던 HPLC 데이터를 차례대로 열어 확인한다. 나 역시 모니터 앞에 앉아 어제 설정한 메서드가 문제없이 적용됐는지, 시료와 기준품의 크로마토그램이 예상한 범위 안에서 생성됐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오버나잇 분석은 늘 기대와 긴장감을 동시에 만든다. 전날 마지막으로 장비 상태를 점검하고 적분 파라미터를 설정한 뒤 시료를 올렸을 때는 모두 안정적으로 흘러가길 바랐지만, 실제 데이터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침이 돼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데이터 파일을 여는 순간, 작은 심장 박동 변화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스펙트럼의 패턴과 피크 형태가 정상 범위에 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하루의 첫 긍정적인 신호가 된다. 만약 예상치 못한 피크가 튀어나오거나 리텐션 타임이 흔들린다면 오전 일정이 바로 변한다. 원인을 추적하고 장비 상태를 재점검하고 시약이나 이동상 조건을 검토해야 하므로 하루 흐름 전체가 달라진다.

오늘도 분석원들 사이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는 유연물질시험을, 또 누군가는 시스템 적합성을 확인한다. 서로 말이 없어도 각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풍경이다. 품질관리팀 특유의 결속력은 큰 소리나 회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향한 반복되는 점검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런 아침마다 실감한다. 우리가 이 공간에 모이는 이유는 단순히 데이터를 적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의 공정과 실험이 오늘의 신뢰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데이터 적분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절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판단이 들어간다. 피크가 분해되지 않고 잘 분리되었는지, 적분 기준선이 올바르게 그려졌는지, 시료 간 편차가 허용범위 안에 있는지 하나하나 검토하는 과정은 마치 사건을 재구성하듯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하나의 배치 데이터가 문제없이 통과되면 그제야 다음 단계의 업무가 이어질 수 있다. 이 흐름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약사의 품질 시스템을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것도 매일 같은 과정 속에서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아침마다 HPLC 기기실에서 시작되는 이 일상은 어찌 보면 반복이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준다. 새로운 배치가 들어올 때마다 조건이 달라지고, 시약의 상태와 장비의 컨디션이 달라지고, 그 변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업무의 깊이가 더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반복되는 점검 과정을 단순한 루틴으로 보지 않는다. 제약 품질관리라는 업무를 선택한 이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할 집중력과 책임감의 근원지라고 느낀다. 매일 아침 기기실에서 만나는 동료들 역시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잘 적분한 크로마토그램과 아닌 크로마토그램... 유연 적분이 제일 어렵지... 신입 보면 적분을 어려워하더라..



이런 이유로 오늘도 아침의 첫 업무를 마치고 나면 하루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 데이터가 안정적으로 나오면 계획된 일정대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문제가 발견되면 그 원인을 규명하는 분석적 사고에 더 많은 시간이 투자된다. 어떤 하루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일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품질관리자의 하루는 언제나 데이터가 말해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데이터를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이 바로 이 HPLC 기기분석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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