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첫 직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매뉴얼’이다. 제약회사는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표준작업지침서)가 더 익숙하다. 특히 제약회사의 품질관리 부서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험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까지도 정해진 절차가 있을 만큼 ‘프로세스’는 이곳의 기본 언어다. 그런데 가끔, 그 절차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혹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건 그냥 건너뛰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작은 생략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가지 예(가정)를 들어보자. 한 신입사원이 시료 분석을 하던 중, 시약의 유효기간이 3일 남은 걸 발견했다. 절차상으로는 유효기간이 7일 미만이면 재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표준작업지침서)가 있었지만, “며칠 남았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그대로 사용했다. 겉보기에 분석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지만, 이후 발생한 품질 이슈로 제품 전량 회수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중에 조사 결과, 해당 시험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졌고, 결국 신입사원의 ‘작은 판단’이 문제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절차를 지킨다는 건 단순한 형식주의가 아니다. 품질관리에서 절차는 곧 ‘재현성’과 ‘신뢰성’을 뜻한다. 동일한 실험을 누구든지, 언제든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어야 의약품의 품질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품질관리란, 신뢰를 만들어내는 직무다. 그리고 그 신뢰는 복잡한 논리보다, 반복되는 단계를 지키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물론 절차는 때로 귀찮을 수 있다. 표준품을 사용하면 로그를 남겨야 하고, 전도도계를 사용 전 교정 일지를 확인해야 하며, 시험이 끝난 뒤엔 항상 세척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한 절차’는 모두 누군가의 실수,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한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생긴 것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품질관리란 바로 그 시스템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신입사원에게 절차는 아직 낯선 언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절차가 몸에 익고, 하나하나 이유를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진짜 품질관리자로 성장하는 중이다.
마무리 조언
절차를 지킨다고 해서 당신이 느슨하거나 속도가 느린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왜 그 절차가 존재하는가’를 알고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약회사의 품질관리 부서에서 당신의 판단은 언제나 ‘절차’ 위에 있어야 한다.
2025.07.04 - [품질관리(Quality Control)/제약] - 10년 이상 현직 제약회사 QC 실무자가 쓴 실무 기반 블로그
10년 이상 현직 제약회사 QC 실무자가 쓴 실무 기반 블로그
“QC는 분석만 한다?”그 편견부터 깨야, 취업이 보인다.제약회사 품질관리(QC) 직무를 지원하려는 많은 준비생들이 묻는다."QC는 분석시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qclab.kr
'품질관리(Quality Control) > 제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도시험 - 과망간산칼륨환원성물질 (과망가니즈산 적정법) (8) | 2025.07.12 |
---|---|
외국계 제약회사 QC 출신이 생각한 외자계 vs 국내 제약회사 (12) | 2025.07.10 |
US FDA Warning Letter로 배우는 데이터 완전성(Data Integrity) (15) | 2025.07.09 |
제약회사 품질관리(QC) 직무의 장점 및 단점 (18) | 2025.07.08 |
제약회사 품질관리 신입사원이면 무조건 하는 업무 : 기기 점검(저울, pH 등) 방법 (17) | 2025.07.07 |